우리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면
반드시 그 문제의식을 따라 그 본질을 꿰뚫어야한다
명심하라
알파를 알지 못 하는 그대는 오메가를 찾을 수 없다

과거, 산업화의 망령들을 몰아내는 데 성공한 민주화 세대들은
수직조직 구조를 파괴하는 대신
수직구조의 꼭대기에 올라가 새로운 망령이 되었다.
물론 그들이 윗 세대처럼
권위주의를 앞세운 군대식, 군부정치식 상명하복을 따라할 순 없다.
그것은 '민주화'의 정신에 위배되니까.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윗세대같은 '독선'이 아닌
그들의 수직구조를 공고히할 새로운 장치
'위선'을 개발하게 된다.
그들은 먼저 자신들의 윗세대의 모습을 떠올렸다.
자신이 틀린 것을 지적받았을 때, '무능'을 감추기 위해 얼굴이 시뻘게지며
소리지르며 윽박지르던 '권위주의'의 시대
그들과 같이 행동하면 자신들도 곧 젊은 세대에게 똑같이 교체되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그들은 자신의 '무능'에 대한 비판 자체를 회피할 허수아비들을 세운다
그것이 오늘 얘기 할 '베타-영(β-young)' 전략이다.
이론 자체는 간단하다.

그들은 누구든지 갈망하는, 아주 특별하고 누구든지 갈망하는
아주 달콤한 자리에 어떠한 '정체성'을 대변하지만
'능력'이 부재된 인물, 즉 '베타-영'을 세운다.
동시에 그들은 이데올로기적 용어를 장치로써 심어놓는다.
'페미니즘', '여성'
2030은 무엇가 잘못된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지만 그들만큼 노련하지는 못 하다
2030은 있는 그대로 페미니즘이라는 그들이 만든 용어를 따라 비판한다.
'반페미'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전략이다.

'정체성'은 언제나 '소속감'을 동반한다.
'페미니즘(여성학)'이라는 용어 아래
쏟아지는 비판은 여성으로서 어딘가
자신이 공격받는 듯한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이를 놓치지 않고 매스미디어는 비판자를 '약자혐오자', '소수혐오자'로 비판한다
그리고 이내 노련하지 못한 2030 남성과 여성의 싸움이 된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이 가스라이팅을 통해 한번남녀가 서로 싸우는 과정이 일어나면
여성은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아래 전체주의적 동조를 할 수 밖에 없고
실제로 그 자리를 갈망하고 또 그것을 위해 '능력'을 쌓아왔던 '여성'은
'여성을 위해서'라는 '정체성 정치'의 이름 아래 오히려 '베타-영'에게 자리를 양보하게 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한다
처음 정체성 정치를 펼친 1세대 정치인들이 아니라

그로인해 발생한 2세대 '베타-영' 정치인들의 경우,
이들은 개인 '능력'이 부재된 상태로 임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들의 '수직조직구조'를 공고히 해줄 '정체성' 정치에 집착하며
그들의 자리를 지켜줄 수 많은 3차적인 베타-영들을 양산한다
그리고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할, 수 많은 '능력'있는 '개인'들이 그들을 비난한다.
그러나 이미 그들이 만들어 놓은 장치, 그들의 이념적 '언더독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 소수자들은 본인들이 혐오 받는다고 생각하고 더욱 자신을 껍질 속에 고립시키며,
더욱 더 '정체성' 정치에 집착하게 한다.
그리고 다시 그들은 '정체성' 정치를 통해 '능력'이 부재된 상태로
핵심 행정기관과 입법기관에 침투한다.
사태는 더이상 겉잡을 수 없다.
이제 '능력'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오직 '조직원'이 되어 '조직'에 아첨하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다.
이로서 민주당의 '무능'이 완성된다.
이것은 진실이다. 못 믿겠다면 그들이 남녀갈등에 관하여 쓴 보고서를 읽어보라
그들은 이미 이 갈등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그렇다. 여기서 본질이란, 수직적 구조주의.내려와야 할 구태가 조직의 힘을 빌어,
내려오지 않기 위하여
그것을 '위선'으로 가리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나?
그래도 어떻게든 '베타-영'들에게 권력을 주어 청년들을 도운 게 아니냐고 말하고 싶나?
그렇지않다.

<X스를 가르쳐주겠다>며 접근하는 어느 남페미 민주인사
이 수직구조에서 베타-영들은 절대 핵심권력에 접근할 수 없다.
개인의 '능력'으로 사냥하는 방법을 잊었기 때문에,
그들의 '조직'이 주는 작고 신기루같은 빵 한조가리를 얻기위해,
민주 인사들의 패악질에 동조하며 점점 그들과 동화되어가며
그들이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하는 개돼지가 된다.
여러사건을 통해 '소수자'를 대변한다는 역할은 뒷전임을 어렵지않게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여태껏, 청년, 여성, 소수자들을 대변한다는 수많은 민주인사들의 패악질을 두 눈으로 직접 목도하였다.
그들은 본인의 음심, 욕망이 동할 때면, 이 수직적 구조주의에서 나오는 권력을 사용하는데 꺼리낌이 없었다.

남페미들이 만들어낸 유토피아. <강X의 왕국>
그들은 절대 '소수자', '아웃사이더' 들을 대변하지 않는다.
그저 이용하고 '아웃사이더'들의 '능력'을 말살시켜
빵 쪼가리에 떼쓰게 만드는 어린아이로 만든다.
그리고 진정한 어른이 될 기회를 박탈한다.

<한편의 블랙코메디>
이러한 반박이 있을 수도 있다.
베타-영들도 어떻게든 능력이 있어서 뽑은게 아니냐? 그들의 학력이 문제냐?
그렇지 않다.
여기서 개인의 능력은 엘리트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뛰어난 지성을 가진 최고의 엘리트 집단인
검사들이 '조직'에 충성하여 또다른 조직파쇼들이 되는 것을 보았다.
'조직' 밖에서 볼 때, 그 누가 부패한 검사를
국가의 법 집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라 하겠는가
'능력'이란 '조직'이 빼앗을 수 없는, 정당한 경쟁을 통해 쟁취하고
'개인'에게 귀속되는 '사냥법'이며
그로인한 '조직'에 저항할 수 있는 '개인'의 '저항권'이며,
'조직' 의 밖에 있는 그 누구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개인의 '역사'이자 '증명표'이다.
파쇼들은 이 '개인'의 '능력'을 빼앗아 그들에게 충성하거나 아부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도록 만들어 왔고
이제 '능력'이 의미가 없고 모두가 조직에 아첨하는,
모두가 '조직원'이 되는 시대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상황을 보라
정치인들은 가스라이팅을 멈추지 않는다.
더 이상의 국가적 성장은 끝났으며
지금의 청년들은 자신들과 달리 나약하다고
그렇기에 자신들의 이 수직구조 위에 우뚝 서서
청년들을 이끌어야한다고 외친다
그러나
그대는 이미 그대가 낸 세금의 대부분을 시민단체들이 무차별적으로 써버리는
'역-낙수효과' 라는 세계경제에 전후무후한 역사를 쓴 민주당 정권을 통해
100만원의 기본소득의 의미가
200만원의 세금을 내고 절반을 받아오는 것임을 알고있다.
이제,
우리는 앞서 학습한 베타-영 이론을 통해 이들의 전략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지자를 늘리는 가장 쉬운 방법이
수많은 베타-영들을 낳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들은 2030과 청년들에게 '저성장' 이라는 공포감과 절망감에
몰아넣고 하나의 독립 개체이자 '개인'으로서 사냥법을
그리고 생존법을 잊게 만들고
개돼지처럼 사료를 구걸하는
베타-영으로 만드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본질에 더욱 가까워졌다.
우리는 '여성'이나'소수자'를 혐오 하는게 아니라
'정체성'정치의 일부이자, 자유민주주의의 정당한 경쟁을 거치지 않고 올라와
우리가 납득할 수 없고 수직적 구조주의자들의 하수인 역할만하는
그러면서 우리를 대변하는 척하는, 그런 '베타-영'들에게 문제의식을 느낀 것이다.
생각해보라
우리 각자가 '개인'으로서 꿈꿨던 사회는 무엇이였나?

우리 중 누군가는 디자이너로서의 꿈을 안고 회사에 들어와
디자인이 아닌 조직에 아첨하는 법을 배운다

또 다른 누군가는 프로그래머로서
꿈을 안고 회사에 입사하여
프로그래밍이 아닌 조직에 아첨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

또 다른 누군가는 진정한 진리의 탐구가 아닌
조직에 아첨하는 법부터 배운다.
우리는 끊임없이 '조직원'이 되는 유혹과 강압을 받는다.

또 한편으로는 '개인'이길 꿈꾸는 이들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현실에 의문을 제기할 때마다
그들은 자신들을 소수자와 아웃사이더들의 대변자라고 자칭하며
위선으로 청년과 개인들이 조직에게 저항할 '능력'마저 거세하고
빵한쪽을 구걸하는개돼지, '베타-영'으로 만드려 하고있다.
이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더이상 속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때문에 우리가 분노했는지
이제 그 본질을 알기 때문이다.
오랜기간 부조리함에 분노했던 '개인'들이여
정체성 정치를 통해 우리를 '능력'을 거세하려는 좌파 파시스트들
그 파쇼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저급한 파시스트들
역으로 우리를 혐오론자 취급하며 우리를 개돼지로 만드려는
이 땅을 더럽히는 더러운 이 파쇼 돼지들에게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의 뜨거운 맛을 가르쳐 줄 시간이 왔다
꿈꿔오던 '개인'의 사회를 이룩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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