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은 3金의 지역주의를 표현하기위해 지역방언을 이용하였을 뿐 어떠한 지역비하 의도도 없음을 미리 밝힙니다
칼럼을 쓴 본인도 지방출신임을 밝힙니다.
사쿠라라는 용어가 80년대 쁘락치라는 용어랑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보기 편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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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모두 음악을 틀고~

자 이제 선수 입장해볼까?
일찍히 대한민국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세 명의 정치인이 있었으니!!!!

첫번째 선수 입장~
부잣집 도련님,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거침없는 상남자 스타일의 이 미남자! PK의 YS !!
두번째 선수 입장~

거침없는 뱃사람같다고? 사실은 여리디 여러~ 호남의 미남자 DJ !!
세번째 선수 입장~

그 누구도 이 남자의 속을 알 수 없다! 이지적인 외모의 미...미... 충청의 JP !!
YS, DJ, JP
우리는 이들의 전성시대를 '3金 시대'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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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산파동'
우리는 암흑기를 살펴보기 위해 먼저 앞서 이 사건을 살펴봐야한다

'사쿠라여?'의 주인공, 신민당 대표 유진산
이 사건은 군부와의 협치를 주장하는 중도통합론자
일명 '사쿠라'인 유진산이 박정희 조카사위 장덕진이 당선될 수 있도록
자신의 지역구를 갑자기 포기하며 벌어진 파동이다

내 시대가 왔어 부려야~
문제는 이게 대선이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벌어졌다는 것인데
7대 대선 이후, 어마무시하게 정치체급이 커진 DJ가
유진산을 당에서 제명하고
자신이 당대표 권한대행이 되야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이게 유진산의 도의적인 문제이기도해서 DJ의 주장이 틀린 것도 아니지만
문제는 '유진산'의 사퇴뿐만 아니라
DJ, 본인에게 당권을 이양할 것을 주장한건데
이게 투표가 20일도 안남은 시점에서 당권싸움이 되어버리니
감정이 격해져 당원들의 패싸움으로까지 번지게 된다.
이렇게 신민당의 총선이 개판나는가 싶었는데...

마!!!!!

깜짝

YS : 지금부터 고마 이 행님이 겨통정리 해준다. 유진산이는 당대표 사퇴! 당대표는 다른 당내 어르신이 맞는다. 알긋나?

하...

동상이 아직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나분디... '나'가 시방 그 박정희랑 대.권.을 두고 다툰 사이다. 이말이여~

임마 이거이거...안되긌네.. 이 행님이 지금부터 한수 가르쳐준다

?

까꿍
놀랍게도 7대 대선 때 DJ와 연합하여 YS를 물먹였던 이철승이
이번에는 YS와 연합하여 DJ의 당권장악을 막는다
결과는 유진산의 사퇴, DJ는 당대표가 되지 못하면서 마무리
간신히 사태를 수습한 신민당은 겨우 14일을 남겨놓은체 총선에 참여하는데
시간도 여유도 없는 그들에게 남은 전략은
DJ, YS, 이철승 등 젊은 수뇌부들을 각 지역에 파견하여
바람이라도 일으켜보자였다.

ㅋㅋㅋㅋ 14일 남겨놓고 젊은 애들 보내서 유세한다고 결과가 바뀌면 그게 선거냐?

신민당 : ㅅㅂ 큰일났네...
그러나 결과는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이 113석
신민당이 89석

?

?
개헌 저지선을 지키는 엄청난 선방을 이루어낸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개헌 저지선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신민당이 당시 YS, DJ, 이철승을 필두로 완벽한 세대교체를 이루어냈음을 의미한다.

이제 박정희와 민주공화당에게 남은 선택은 없다.
예정된 후계자인 JP에게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하여
세대교체를 도모하거나
아니면
어디가 끝인지 모를 이 권력욕의 터널을 끝없이 질주하거나

이듬해 10월, 박정희정권은 유신헌법을 공포한다

...

박정희는 3선개헌 전 JP 세력을 약화시켰던 것처럼
이번엔 유신직전 민주공화당 4인방 세력(김성곤, 길재호, 김진만, 백남억)을 박살낸다.
이것이 10.2 항명파동이다.
이제 여당 내 박정희에 반기를 들자는 없다.

이제는 신민당의 차례다.
박정희는 군대를 동원하여 의회를 해산시킨다.
국회는 강제해산되고
야당의 국회의원들은 어디론가 끌려가 고문당한다.
이렇게 여야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1972년 10월
유신이 공포된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아니,
새로운 제 4공화국의 대통령은
이제 행정뿐만 아니라 사법, 입법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바야흐로 암흑기가 시작된 것이다.
누구한테 암흑기냐고? 정치인들? 3김?
사실 YS나 DJ의 경우 암흑기 이전에도 위협은 존재했다.

박근혜가 커터컬 테러를 당하자 나도 박통 때 질산테러를 당했다고 격려하는 YS
그의 돌려까기 실력은 여러모로 역사에 남을만하다.
YS 살해 미수로 그친 질산테러 사건이나
DJ가 한 평생 지팡이를 짚게 만드는 의문의 교통사고가 그 예시인데
유신시절에는 이게 더 노골적으로 변하여

DJ 납치사건같은 형태로 벌어진다.
이는 일본에서 체류 중이던 DJ가 10월 유신이 공포되자 해외 망명을 결심
이를 놓치지 않고 중앙정보부가 DJ를 납치 및 살해하려고 했던 미수사건을 말한다.
유신정권은 납치 실패 후 풀려난 DJ를 가택연금까지한다.
그리고 이러한 유신정권의 막가파적 행동들은
엄청난 비난을 불러오는데
국제적으로 유신정부의 위상은 바닥에 떨어지고
대학가에선 유신반대운동이 펼쳐지기 시작했으며
각종 지식인과 종교인들이 규탄, 개헌 청원 성명서를 발표한다.
이렇게 유신정권에 대한 비토가 커져만가는데
유신정권은 그저 긴급조치만을 남발할 뿐이다.
그러던 중 74년 8.15일 박정희 대통령의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피살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헌정 역사상 가장 기괴했던 권력집단
유신정권의 '대통령 경호실'이 탄생한다.
그리고 '차지철'이 대통령 경호실장에 임명된다.
대통령 경호실장 직은 이후 장관으로 격상된다.

이 때 전두환이 경호실 작전차장보로 쌓은 노하우와 인맥은 후에 12.12 쿠테타 성공의 주요 원인이 된다.
대통령 경호실은 수도경비사령부에 대한 지휘권 뿐만 아니라
정보수집, 각종 첩보활동을 시작한다.
이는 중앙정보부와 부장 김재규와의 마찰로 이어진다.
이제 사태는 겉잡을 수 없다.

유신 속에서 '산업화 위의 민주화'를 꿈꿨던 JP. 그는 4인방과 함께 거수기가 된 민주공화당에서 JP체계를 구축한다
75년 12월 이 유신 열차의 브레이크가 고장났음을 깨달은 JP는 병을 핑계로 직위에서 물러난다

날 빼불면 섭하제~
76년 3월 1일 가택연금 상태의 DJ는 탈출 후 구국선언, 징역 5년을 선고 받는다
한편 진산파동 때, 이철승과 함께 DJ의 당권 투쟁을 막고 성공적으로
자신의 세력을 확립 했던 YS는 육영수 여사의 피살 이후
신민당의 총재가 된다.

그리고 이 혼란스러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75년 박정희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진행한다.
회담은 혼란의 종식과 화합처럼 보였지만
이는 유신정권의 함정일 뿐이다.
이를 계기로 YS에게 '사쿠라'라는 프레임이 붙기 시작한다.
그리고 76년 5월

시끌시끌

YS : 뭐고,,,? 당사 앞이 와 이리 시끄럽노?

나다

니가 여기 와 있노..?

그건 알거 없고

조져!!
이철승이 주도한 당권투쟁, '신민당 각목사건'이 발생한다
이철승은 정치깡패들을 동원하여 YS의 당 총재 직인을 탈취하려는데

이 때 동원 된게 그 유명한 정치 깡패, '김태촌'이다.
YS는 재빨리 총재실로 대피하여 바리케이드를 세우고 농성에 돌입
"김영삼은 항복하라"는 깡패들의 외침에 이렇게 답한다.

마!!

내가 깡패 새끼들한테 맞아죽겠나? 내 박정희 곰마 무너뜨리고 이철승이도 매장해뿐다. 알긋나? (실제로 한말)

하...ㅋㅋ 새끼 독하네... 야 도끼 가져와서 문 부숴!
정치 깡패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자 YS는 그대로 창문깨고 투신
다리가 부러지면서까지 탈출을 감행한다

저... 저 미친놈 저거
이철승은 당 직인을 탈취하려는 자신의 계획이
YS의 또라이기질 때문에 차질이 생기자
그냥 전당대회 장소인 서울 시민회관을 점거
자신 측근들만으로 전당 대회를 치뤄 당 총재가 된다.

요건 몰랐지?
물론 YS도 이에 질새라 신민당사에 전당 대회 개최
자신이 당 총재가 되니
한 당에 두명의 총재가 생긴 것이다.
이런 상황에 당이 제대로 돌아갈리는 만무하고
결국 당이 쪼개지기 직전까지 가서야 양측이 다시 투표하기로 합의하는데
투표 결과
앞서 언급한 영수회담 등
그 특유의 사쿠라 프레임에 말린 YS는

이철승에게 당권을 뺏기고 만다.

내가 다리 몽뎅이까지 부셔짔는데 우예 사쿠라고!!!
이렇게 YS의 천방지축 정치인생이 끝나는가 싶지만
여기서 한가지 반전이 일어난다.

엌ㅋㅋㅋ사실 내가 사쿠라옄ㅋㅋ
사실 이철승이 '왕사쿠라' 라는 의혹이 제기 되기 시작한 것이다.

<야당의 총수냐, 여당의 선전부장이냐>
이철승을 비판한 한완상 전 부총리
그는 이철승계에게 협박을 받았다.
시작은 이철승의 LA 연설 도중 유신체제 옹호 발언인데
이것이 조선일보에 기사화되기 시작하면서
이철승의 왕사쿠라파를 비롯해
후에는 신민당 각목사건이나 김태촌 동원 등이
차지철의 사주에 의한 것임이 밝혀지면서
대통령 경호실의 후원을 받는 경복궁파까지
신민당은 그야말로 거대한 의문의 소용돌이 속에 빠지기 시작한다.
'차지철의 개입', '누가 유신정권에 대항하는 자인가'
결국 이 모든 의문에 결론은 새로운 당 총재 투표의 몫이 되어버리고
이윽고 79년 운명을 결정짓는 전당대회가 열리게 된다.

오랫동안 정치권 밖에서 투쟁하던 DJ가 참석한 상황

동상.. 내가 동상 없을 때 동상 측근들 얼마나 잘 챙겨줬는지 알지라? 김영삼이 고거는 동상들 측근 쳐다도 안봤어야

야, 지가 고건 잘 알지라

허허 그려 이따 연설 잘 부탁혀~
DJ는 연설을 시작한다

"...왜"

“왜 박정희 정권은 김영삼 동지가 총재가 되는 것을 한사코 방해하며 싫어합니까? 고것은 김영삼 동지가 총재가 되면 민주회복이 촉진되고! 유신체제가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

?

웅성웅성

'나'가 봤을 때!
“반독재의 선두에서 박정희 정권뿐만 아니라 이철승 당권파로부터 온갖 박해를 받고 있는 김영삼 동지가 이번 경선에서 당선되는 것이 신민당을 살리는 길이고!"


"국민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에!"


"나는 김영삼 동지를 지지합니다.”

....김

김영삼! 김영삼! 김영삼! 김영삼! 김영삼! 김영삼!
그렇다. 이것이 DJ의 79년 YS 지지 연설이다.
DJ는 왕사쿠라파와 협력하여 당권을 얻기보다 유신체제와 맞서싸울 YS를 선택

이러한 대의적 행동으로 인해
YS와 DJ는 역사에 꾸준히 등장하는 그 특유의 동지적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애증의 나선이 다시 한번 더 꼬인 것이다.
이 후 상황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상황으로

중도통합과 사쿠라의 실체를 알게 된 야당총재 YS는 더 이상 거리낌없이 야당선명론 주창
이는 YH사건과 YS의 국회의원 제명으로 이어지며
이에 반발한 부산 마산을 중심으로 부마항쟁이 발발

끝없이 Divide & Rule 이라는 철칙을 고수해온 박정희의 통치아래
교만했던 차지철, 광기에 사로잡혔던 김재규, 무기력했던 김계원이라는 인물들이
하나의 촌극을 이루어
79년 10월 26일 궁정동
박정희의 유신정권이 막을내리게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서울의 봄

시발 이제 우린 좆됐네 ㅠㅠ

너무 걱정마유~
JP,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다.
(전성기편에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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